[한겨레] 성매매 ‘출구’를 찾아서
② 벨기에
벨기에 북동부지역에 위치해 유유히 흐르는 스킬더강을 안고 있는 안트워프시. 정오를 막 넘어설 무렵 상쾌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베르베르쉬 거리에 남성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리 양쪽에 늘어선 주택의 유리문 안쪽에는 원색적인 속옷차림의 여성들이 의자에 앉아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노골적인 유혹의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유리문에 ‘촬영금지’라고 쓰인 붉은색 스티커를 못 본 체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 하자 황급히 안쪽 커튼 속으로 몸을 숨기며 욕설을 퍼부었다.

3~4개 블럭쯤 되는 이 거리에 있는 유리문 주택들은 이 곳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의 거처이자 일터다. 이곳은 겉으로는 서울에 있는 몇몇 집창촌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합법화한’ 성매매의 거리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흥정을 하고있는 성매매 여성과 남성을 보고도 그저 느릿느릿 이 거리를 지나치는 경찰 순찰차가 이곳이 합법적인 성매매 업소임을 확인시켜준다.

# ‘허가받은’안트베르펜 홍등가
벨기에에서 성매매는 불법이 아니다. 네덜란드나 독일처럼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합법화’란, 성매매에 대해 아무런 법률적 금지나 처벌조항을 갖고 있지 않은 영국·프랑스 등의 ‘비범죄주의’와는 다르다. 모든 형태의 성매매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부에서 ‘허가받은’ 형태의 성매매만 가능하며, 허가받은 성매매 영업은 세금징수·지역과 형태 제한 등을 통해 엄격하게 규제되고 통제된다는 뜻이다. 안트워프시에 있는 세 군데의 홍등가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정부의 허가를 받고, 벌어들인 수입에 대해 일정한 세금도 납부한다.

‘성 노동자’로 분류되는 벨기에의 성매매 여성은 ‘근절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범죄 방지와 보호에 초점을 둔 ‘규제의 대상’이다. 브뤼셀에 사무실을 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메르츠 위르겐 국제협력 담당관은 “성매매 규제주의는 성매매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관점에서, 규제를 통해 여성들에 대한 법적보호를 강화하고 관련 범죄를 줄이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벨기에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성매매 그 자체가 아니라 불법적인 인신매매다. 벨기에는 인신매매에 의한 범죄를 줄이기 위해 지난 95년 형법을 개정해 다양한 인신매매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했다.

#성매매 여성은 ‘성 노동자’
26개 지방정부에 전담 판사를 두고 연방경찰·검찰과도 협조체제를 통해 포주·성매매 알선자 등이 적발될 경우 강력한 처벌이 이뤄진다. 성매매를 목적으로 여성을 유인하거나 고용하는 경우 1~5년의 징역과 벌금형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폭력·협박 등 강압적 수단이 사용된 경우 최고 15년으로 형량이 뛴다. 포주가 이런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1~3년 동안 직업소개소·술집 등을 소유하거나 운영하지 못하고, 재산압류와 함께 최고 20년간 사회봉사활동에 처해지기도 한다.

#포주·매매 알선자 죗값 톡톡
벨기에 정부는 인신매매 방지 대책과 함께 여성 피해자의 보호와 탈성매매·재활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내무부 외국인사무소의 요한 혼게네르 부심의관은 “피해 여성 보호·지원은 인신매매·성매매 여성들이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인신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지원이 인신매매범 검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신매매된 외국인 여성이 범죄조직에 대해 소송을 걸 경우 상당 기간의 합법 체류를 보장하고 이 기간 동안 쉼터에서 심리·의료·법률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심지어 이 여성이 연루된 범죄조직이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무제한 체류자격을 주기도 한다.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한 보호시설은 현재 안트워프의 ‘파요케’를 비롯해 브뤼셀과 리에쥐 등 3곳이 있다. 인신매매돼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 이곳에 찾아오면 일단 인터뷰를 통해 이 여성이 인권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지, 포주에게 착취당하고 있는지 확인한 뒤, 이곳에 입소시켜 보호와 재활 서비스를 시작한다. 벨기에에 정착하려는 여성에게는 불어를 배울 수 있도록 언어교육까지 시켜준다.

#피해여성 보호시설 3곳 운영
안트워프 인신매매 피해여성 보호시설 ‘파요케’를 운영하고 있는 팟시 소렌슨 유럽의회 의원은 “이곳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적은 인신매매 여성의 보호·지원을 통해 성매매에서 벗어나 재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