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의 비율이 10% 중반대인 나라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개발도상국이라고 하는 아프리카 르완다도 여성 정치인 비율이 50%를 넘습니다. 부끄러운 일 아닌가요."

김정숙(66)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 회장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여성 인권 문제와 동일 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국회나 지방의회에 여성 진출이 활발한 나라일수록 여성의 인권이 높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노인ㆍ탈북자ㆍ다문화 문제도 따지고보면 모두 여성들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인권 수준은 선진국 진입을 노리는 나라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 없습니다. 법이나 제도를 통해 여성 인권 현안을 자기일처럼 다룰 여성 정치인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5일 오전 11시부터 이화여대에서 제47회 전국여성대회를 여는 김 회장은 그래서 이번 대회의 화두를 '여성 정치참여 50%'로 정했다. 내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여성의 비율이 50%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30%를 여성에게 공천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지만 유명무실해요.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번 전국여성대회에서 여야에 이걸 의무적으로 지키라고 요구할 겁니다. 만일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관련 정당에 대해선 낙선 운동도 펼칠 각오입니다."정당 입장에선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한나라당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집권 여당이 공천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할당제를 지켜야 야당이 동참할 것이고, 이렇게되면 여성 정치인 비율이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라는 논리다. 여성 정치인을 체계적으로 배출해낼 정치 아카데미도 각 당에서 만들어야 '정치 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김 회장은 또 여학생을 위한 진로교육을 개선해야 하고, 성인여성을 위한 평생교육프로그램이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진로지도가 엉망이다보니 취업이 어려운 학과로 진학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게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성인 여성용 평생교육프로그램도 절대 부족해 빈곤 여성의 양산을 낳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올해 전국여성대회엔 여성 지도자 4,0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새로운 대한민국, 여성의 힘으로'를 주제로 대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가 1, 2부로 나눠 열린다. 김활란 여성지도자상과 올해의 여성상 등의 시상식도 함께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