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때 참 좋았어요. '나도 평범하게 살 수 있구나'하는 희망을 가졌죠. 100만원 월급 쪼개서 쓰는 것도, 돈 아끼려고 도시락 싸는 것도 다 좋았어요. 근데 이젠 소중한 일상이 다 깨져버렸죠. 다시 그렇게 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나봐요."

성매매여성이었던 최지혜(가명,30)씨는 2012년 11월부터 서울시립성매매피해여성 지원시설 '다시함께상담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주된 일은 문서 수발신 목록 관리, 비품 관리 등 행정 업무. "일하는 게 정말 행복했다"던 그는 작년 6월 일터를 떠나야만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 그는 기자와 만나 그간의 사연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그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경기 파주 집창촌인 '용주골'에서 일했다. 잦은 성병과 허리통증으로 일을 관둔 그는 업주에게 920만원가량의 빚을 지고 용주골을 떠났다. 1년 가까이 업주를 피해 다니던 그는 2012년 2월 '다시함께'에서 상담을 받았다. 그 뒤 직업훈련을 받았고 2013년 11월 '다시함께'에 취직했다.

그의 과거를 아는 이는 당시 소장과 팀장급 3~4명뿐이었다. 팀장 중에는 2012년 2월 상담을 받았을 당시 상담원이었던 김모씨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과거가 잊혀질 줄 알았다. 그러던 작년 2월, 직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느꼈다. 몇몇 직원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곧 이유를 알게 됐다. 근무 태만을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상담원 김씨가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동료 직원들의 근무 태도와 이력을 공개한 탓이었다.

센터 직원은 불론 관련 법인 사람들도 그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됐다. 그는 "사람들이 수군댄다는 느낌에 출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저녁에 센터에 나와 일을 했다"고 했다. 대인기피증이 도져 다시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석달여 속앓이를 하던 그는 그의 과거를 폭로한 김씨가 더는 상담원 업무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김씨의 행위, 그리고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가야 하는 정부지원금을 유용해 시설관리비로 쓴 센터의 내부 비리를 제보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해 5월 서울시의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서울시 간부 A씨를 찾아갔다.

그는 진정서를 건네며 자신이 과거 이력이 공개된 성매매 피해 여성임을 밝혔다고 한다. "센터 직원들이 내가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걸 알게 돼서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A씨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고 했다. "그럼 파주 가서 일하면 되잖아요." A씨는 내부 비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나를 귀찮아하고 멸시하던 A씨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나흘 뒤 그는 자신의 이력을 공개한 김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김씨는 현재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A씨를 만나지 한 달쯤 지나 센터를 그만뒀다. 자살 시도도 두 번 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작년 말 한 언론이 센터의 정부지원금 유용에 대해 보도했고, 서울시는 그제야 실태 파악에 나섰다. 서울시 조사 과정에서 센터 측은 자금 유용에 대해 보도했고, 서울시는 그제야 실태 파악에 나섰다. 서울시 조사 과정에서 센터 측은 자금 유용에 대해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달 초 감사원에 A씨가 비리 제보를 묵살하고 민원인을 무시했다고 제보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최씨에게) 막말이나 냉대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최씨가 파주에서 일하다 왔는지 전혀 몰랐고, '파주 가서 일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최씨가 A씨를 만난 직후 건넸다는 진정서 첫 문장은 '2008년 8월부터 2010년 4월까지 경기도 파주 용주골에서 성매매여성으로 일을 하였습니다'로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최씨가 겪었다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수도권 지역에서 10년 이상 관련 분야에서 일한 여성인권 활동가는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상담센터의 상담원이 당사자 활동가(최씨)를 보호하지 못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담당 공무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역시 최씨에겐 씻지 못할 상처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다시 사회에 나가는 게 우렵다"고 했다. "파주에 있을 때, 바깥 세상은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더 싸늘하고 무섭네요."

보도일자 : 2015. 02. 24.
출처 : 조선일보